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라나랍 의수 (문단 편집) == 인간관계 == '''[[연세란|화비]]와는 작품 시작부터 좋든 싫든 얽히는 사이.''' 신분도 있거니와 자주 두통이 와서 내명부의 일을 돌볼 수 없는 황후 대신 화비가 실무를 맡는 편이 많은데, 화비가 사사건건 황후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을 온화하게 받아주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후도 사실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닌데, 부드럽고 사리에 맞는 말을 하면서도 은근히 화비를 견제하고 함정을 파서 화비가 빠지길 기다리며[* 화비가 자신을 업신여긴다는 걸 빤히 알면서 복자를 시녀로 내려줬다. 화비 성질에 복자가 절대로 무사할 수 없을 거라는 것쯤은 짐작했을 텐데도 말이다.] [[비운연|여빈]]이 미쳐서 중독 사건을 입에 담았을 때나, [[연갱요]]가 태의를 데려가서 자신이 치료도 못 받고 두통으로 괴로워할 때 등 화비의 잘못을 드러낼 일이 있으면 서슴치 않는다. 원명원에서 천둥이 친 날에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화비의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견환]]에게 갔을 때는 '''"걔가 옛날에 계략을 써서 나한테 황제를 뺏아간 일을 고대로 돌려받는구나."''' 하고 화비에 대한 악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냈을 정도. 견환을 유산시킨 죄로 화비가 찬밥 신세가 되었을 때, [[안릉용|릉용]]이 총애를 받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게 하여 조롱하기도 했다. 결국 '''화비가 파멸하기 무섭게 황제를 대신해서 자살 명령을 내린 것은 황후였다.''' 초반에는 견환을 여러모로 도와주려는 듯이 보였다. 특히 안릉용의 아버지를 구명하기 위해 견환과 릉용이 찾아왔을 때, 재가 이는 향로에 빗대어 "화비가 날뛰고 있는 후궁을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고 묻자 견환은 향로에 찻물을 붓고 조조의 단가행을 읊으며 황후를 돕겠다는 뜻을 비친다. 그 후로 화비를 엿먹인 견환에게 원앙병풍이나 화전옥을 보내는 등 살뜰하게 대하는데 사실 '''황후는 화비만 제거하면 견환도 없애버릴 생각'''이었으며, 실제로 릉용과의 의자매 관계를 이용해 견환의 아이를 유산시키고, 견환이 [[이정언|제비]]에게 갈굼당할 때 무시하는 등, 자신이 손만 안 썼을 뿐이지 진작부터 암암리에 견환을 사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순원황후]]의 옷 사건으로 견환을 훅 보내버린 뒤로는 그런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견환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안릉용을 시켜 [[견원도]]의 감옥에 쥐를 풀어 [[페스트]]에 걸리게 했다. 견원도의 중병 소식을 들은 견환이 충격받고 유산하면 좋고, 실패하더라도 견원도를 죽여 견환이 의지할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하도록 꾸민 것.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이번에는 [[과이가 문원|기귀인]]을 통해 감로사의 정백을 부추겨 학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하게 몰아넣는 조치가 오히려 견환으로 하여금 [[애신각라 윤례|윤례]]를 의지하게 만들었으며, 가족을 지키려는 각오를 다지게 해 결국 환궁하여 황후의 가장 큰 적으로 등극하고 말았다.'''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면 견환은 체념하고 조용히 살았을 것이다. 의수는 그나마 겉으로는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와 [[오아 성벽|태후]]에게만은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 같으나 황후의 악행을 추궁하는 태후에게 "저 말고 오라나랍 씨를 위한 대안은 없죠, 압니다." 라는 식으로 슬그머니 조소하고, 견환의 환궁을 막기 위해 '''수강궁에 불을 지르고, 흠천감을 조종해 천문이 가리키는 운수가 나쁘다는 괘를 나오게 만들기도 했다.''' 화재 당시 태후는 그렇잖아도 오랜 병으로 몸이 약해진 상태였는데, 이 때문에 놀라서 병세가 더 위중해졌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은혜를 베풀고 감싸준 태후한테도 아주 막나간다. 원작에선 서출임에도 후궁이 되어 황자를 낳고 태후가 된 주성벽을 여걸이라며 존경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언니를 황후로 책립하는 것을 허락하고 자신보다 언니를 더 좋아해 은근히 원망한다. 황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진정으로, 그가 다른 여자 사이에서 자식을 보는 것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사랑했다. '''자신이 아닌 [[순원황후|언니]]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조차도 감히 그를 미워할 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황제도 의수를 순원만큼 사랑하지는 않아도 대단히 믿고 의지하는데, 그런 묘사가 많이 나온다. 특히 황제와 단둘이 있을 때, 둘의 의견이 일치하면 손을 맞잡는 것이 대표적이다. 황제는 [[제월빈|단비]]나 [[풍약소|경빈]]을 존중은 해도 손을 잡는 묘사는 잘 안 나오고[* [[제월빈|단비]]는 거의 만나지를 않고, [[풍약소|경빈]]과는 [[심미장]]의 독살 위협을 잘 처리했을 때 잡아주었다.], 그토록 총애하던 [[견환]]에게도 안아줬으면 안아줬지, 손을 잡는 묘사는 잘 안 나왔는데 황후와는 굉장히 자주 손을 잡는다. 일종의 예우 및 애정표현인 것이다. 견환이 처음 간택되었을 때 봉호 완을 황후의 손바닥에 써 주고 나서 둘이서 손을 잡고 좋아했고, 궁을 [[연세란|화비]]의 관리하에 놔두고 둘이서 향을 올리러 갔을 때 견환의 아이가 황자이기를 빌고 나서 둘이서 손을 잡았고, 희비 환궁 건으로 합의를 봤을 때도 둘이서 손을 잡았다. 그러나 '''견환이 환궁하면서 그녀의 본색을 하나하나 벗겨나가자 그 신뢰도 점차 무너지게 된다.''' 친자 확인 사건 때 물에 수작을 부린 것이 들통난 뒤로는 명절 외에 경인궁에 황제가 방문하는 일은 없게 되었으며, 견환을 밀쳐 유산을 시켰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난 뒤에는 금족령을 내리고 아예 만나러 가지도 않게 되었다. 마지막 만남은 순원황후의 죽음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였고, 황후의 본성과 광기를 알게 된 황제는 죽어서도 만나지 않겠다고 공언해버렸다. 언니인 [[순원황후]]는 서출 콤플렉스의 근원이자 일생의 그림자. [[류렴자|작가]]의 말로는 처음에는 그저 불쌍한 여자일 뿐이었고 어릴 때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언니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엔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고 적복진 자리까지 내줘야 했고 언니가 죽은 후에도 일생 동안 그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릴 땐 열등감을 느끼긴 했어도 자신에게 잘해줬기 때문에 싫어하진 않았다. 회임한 후 언니가 찾아온다고 했을 땐 언니 앞에서 기를 펼 수 있다고 좋아했다. '''그래도 언니를 죽인 직후에 죄책감과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의수는 자신의 장기말들인 [[이정언|제비]]나 [[과이가 문원|기귀인]], [[안릉용]]도 소모품으로 본다. 특히 제비에게는 온화한 황후 코스프레에 주력하고 있을 때는 너그럽게 대하는 것 같았지만, 녕귀인을 불임으로 만드는 죄를 터뜨리자 "나한테 사주받았다고 해봤자 아무도 안 믿는다. 내 뒤에는 태후가 있다. 니가 정녕 [[애신각라 홍시(후궁견환전)|홍시]]를 위한다면 자진하는 것이 좋을 거다." 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과이가 문원|기귀인]] 경우에는 허구헌 날 멍청하다고 까고 하찮은 일이나 시키며, 사향구슬 목걸이를 주어 불임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기귀인은 자신과 더불어서 몇 안 되는 만군기인 황후만이 자신과 가문을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끝까지 황후의 악행을 실토하지 않았지만, 정작 황후는 과이가 가문의 몰락을 막는데 일말의 도움도 주지 않았다. [[안릉용]]은 초반에 도와주고 감싸주었으며 오래 부려먹었지만 사실상 주종간의 신의는 전혀 없다. 릉용이 피임탕을 먹는지 감시하기도 했으며, 비교적 신분이 낮은 릉용이 총애를 한 몸에 받자 다른 비빈들이 험담을 하는데 그걸 야단치면서 한다는 말이 "미인은 사내의 마음에 약이 되니, 폐하께 약을 드렸다고 생각하게."였다. 릉용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의 부류인 '''자신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사람들'''의 꼭대기에는 바로 황후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릉용은 자신이 어머니처럼 모시던 황후의 수중을 벗어나지 못하고 끝까지 이용당하다가 서글프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 릉용이 황후의 진정한 약점을 [[견환]]에게 넘겨준 것은 실로 아이러니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